도입: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다, 규칙으로 포장된 통제의 시작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뤄진 강서 고문 살인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낯설고도 충격적이었습니다.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514차례의 폭행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단어가 바로 ‘국프(국가프로젝트)’였습니다. 얼핏 보면 둘만의 은어 같아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건 다툼을 줄이기 위한 약속이 아니라 폭력을 합리화하고 상대를 길들이기 위한 장치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가해자가 이 규칙을 마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합의처럼 설명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짓말을 이유로 인간적인 대우를 박탈하고, 상대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구조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연인 사이의 갈등’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관계의 이름을 빌려 폭력을 정상처럼 보이게 만든, 매우 위험한 통제 시스템이었던 거죠.
둘만의 규칙처럼 보이는 말이 사실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1: ‘국프’는 왜 무서운가, 관계 언어로 위장한 처벌 시스템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가 현실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가해자의 기준에 맞춰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국프’라는 문건과 규칙은 그런 구조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서로 합의한 규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쪽이 해석권과 처벌권을 모두 쥔 비대칭 관계였던 겁니다.
더 무서운 건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피해자가 그 규칙을 거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거야’, ‘이건 원래 우리 사이의 약속이야’라는 식으로 인식이 바뀌면, 폭력은 폭력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결국 피해자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가해자는 폭력을 관계 유지의 도구로 계속 사용하게 됩니다.

2: 514번 폭행이 말해주는 것, 폭력의 강도가 아니라 구조의 반복
이번 사건에서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구조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514번이라는 횟수는 우발적인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반복과 습관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한 번의 폭발이 아니라, 이미 일상화된 폭력의 끝에서 벌어진 비극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볼 때는 ‘왜 저 상황에서 못 벗어났을까’만 묻기보다, 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는지를 봐야 합니다. 감시, 규칙, 처벌, 사과, 재통제의 패턴이 이어지면 피해자는 점점 외부와 단절됩니다. 그 순간부터 폭력은 더 이상 몸으로만 가해지는 게 아니라, 판단력과 현실감까지 무너뜨리는 형태가 됩니다.
폭력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고, 반복될수록 더 정교한 통제가 됩니다.
마무리: 우리가 이 사건에서 봐야 할 것
‘국프’라는 이름은 이상한 별명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관계를 포장한 폭력의 설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규칙과 처벌을 앞세운 통제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통제의 명분으로 바뀌는 순간, 관계는 더 이상 관계가 아니게 됩니다.
이번 사건을 단순한 충격적인 뉴스로 소비하고 끝내기보다, 가스라이팅과 통제의 신호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를 벌주는 규칙, 외부와의 단절, 말 한마디로 인간성을 박탈하는 분위기. 이런 징후가 보인다면 그것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